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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ditor’s letter

■ Editor’s letter

김유진 편집부회장

노년학 연구자의 자기반성
지난 십일월 말, ‘경북 역발상 미래포럼’이라는 자리에 발제자로 참여하게 되었다. 포럼 주최 측에서는 발제자와 토론자들에게 고령 인구가 많다는 것이 장점이 될 수 있는 경제적·사회적 역발상 아이디어를 제시해달라고 하였다. 2020년 기준 고령인구 비율이 21.7%인 경상북도는 전국 17개 시·도 중에서 노인 인구가 두 번째로 많은 곳이다(통계청, 2021). 주최 측에서는 어느 곳에서도 시도하지 않은 것을 경북에서 시도해 볼 수 있도록 다양한 정책적 아이디어를 원한다고 하였다.

“많은 노인 인구가 장점이 될 수 있다고?”, “노인 인구, 어느 집단을 가리키는 거지? 베이비붐 세대인 젊은 노인?”,“만약 역연령으로 나누지 않고 뭉뚱그려서 모든 연령대의 노인을 칭하는 거라면, 코로나 19로 촉발된 비대면 돌봄 또는 제론테크놀로지 기술을 노인 인구에게 테스트해 본다? 이러한 실험의 대상이 되는 것 외에 무엇을 생각할 수 있을까?” 이런저런 생각을 하며 무슨 주제로 발제할지에 대해 한참을 고민한 끝에, 주최 측의 동의를 구하고, 최근 노인돌봄 관련 연구를 하면서 갖게 된 노인돌봄 정책의 문제, 돌봄서비스 이용과 노인의 역할에 대해서 발제하였다. 예상대로 토론 시간에는 로봇돌봄 등 기술활용의 발전과 현재 고령친화산업의 문제점 중심의 이야기가 오고 갔다. 발제자가 제기한 문제의식인 노인이 자기가 원하는 곳에서 나이 들어가며 살 수 있는 주체가 되도록 돕는 돌봄에 대해서는 거의 관심이 없었다. 이것도 돌봄 정책에서 시도할 수 있는 역발상 아이디어일 수 있는데 말이다. “현재 칠팔십 대 이상의 고령 노인에게 자립적인 삶을 기대하기는 어렵다. 현재 그 연령대의 노인은 소비자도 아니고 생산자도 아니다. 그러나 베이비붐 세대는 다를 것이다. 베이비붐 세대가 사회적 자원이 될 수 있는 것을 찾아야 한다.” 주최 측에서 이렇게 정리하며 그날의 포럼이 마무리되었다.

이 포럼의 발제를 준비하며 든 필자의 생각에서부터 토론에서 나눈 이야기, 그리고 주최 측의 마무리 논평까지, 여러모로 찝찝한 마음이 들고 어딘가 석연치가 않다. 이 모든 게 다 우리 사회의 현재 노인 인구에 대한 인식이 아닐까? 백번 양보해서, 정책의 효과성과 효율성을 따져야 하는 정책전문가 또는 행정가는 노인 인구의 효용성을 무엇보다 중요한 가치로 여길 수 있다고 치자. 그런데 연구자인 나의 시각도 그들과 별반 다르지 않은 것은 아닌가? 문화인류학자 정진웅(2014)이 지적한 것처럼, 노년학 연구자도 연령주의적 담론을 무의식적으로 답습하고 있을 수 있다. 정진웅(2014)은 노년학 연구자는 노년에 대한 자신의 인식이 한국사회의 연령주의를 반영하거나 그대로 따라 하는 것은 아닌지 부단히 성찰해야 한다고 강조하였다.

그동안 나의 연구가 노년과 노인 인구에 대한 부정적 이미지 형성에 이바지한 것은 아닌지에 대해 걱정하며, 지난 연구논문들을 다시 읽어보게 되었다. 그동안의 나의 연구는 전형적인 문제 중심적 연구라고 할 수 있다. 그때그때 사회문제화된 주제에 관해 연구한 결과물의 제목과 내용에는 보통 ‘무슨 문제를 가진 노인’이 그 중심에 있다. ‘폐자원 수거 노인’, ‘자살, 고독사 위험이 높은 노인’, ‘공공주택에 거주하는 저소득 노인’, ‘사회적 고립이 심각한 노인’, ‘주거 취약 저소득 노인’, ‘피학대 노인’, ‘자살시도 노인’ 등등. 노년학은 문제 지향적인 학문(problem-oriented discipline)이자 문제해결을 위한 학문(problem-solving discipline)이다(Nydegger, 1981). 그리고 사회복지학 연구도 실천학문이자 응용 학문적 특성에 따라 개입을 위한 현상의 설명과 이해, 근거 마련을 주목적으로 한다. 이에 따라, 노년학, 노인복지 연구자가 문제 중심적 연구를 하는 것은 어쩌면 불가피한 일일 수 있다.

그런데 문제는 연구 질문을 어떻게 설정하느냐에 따라 어떤 한 사람이 피학대 노인도 되었다가 폐지 수거 노인도 될 수 있고, 저장 강박증 노인이나 돌봄욕구가 높은 노인으로 불릴 수도 있다는 것이다. 위에 언급한 연구에 참여한 노인들의 인구사회학적 특성을 보면, 거의 비슷하다. 소위 노년기 4중고(四重苦)를 복합적으로 겪는 노인이 우리 사회에 많기 때문이다. 만약 어떤 노인을 폐자원 수거 연구 대상자로 만나지 않고 주거 취약 저소득 연구의 대상자로 만났다면, 그는 주거 취약 노인으로 내 연구에 등장하는 것이다. 동일 인물인데 연구 질문과 문제 설정에 따라 마치 ‘귀에 걸면 귀걸이. 코에 걸면 코걸이’하는 식으로 그 사람을 어떤 문제 중심으로 집중해서 보거나 여러 차원으로 나누어 보면서 ‘그의 경험이 어떻고, 본 현상의 위험요인과 보호요인은 무엇이라고’ 하는 식의 연구를 한 것이다.

정진웅(2014)은 이러한 지적도 하였다. “문제 중심적 노년 연구는 연구가 지닌 선의에도 불구하고 노년담론의 일부로서 노년에 대한 부정적 이미지의 형성에 기여하기 쉽다. 노년에 대한 부정적 이미지의 생산이라는 측면에서 노년 연구가 설정하는 연구문제 자체가 부지불식간에 노년을 문화적으로 이질적인 타자로 간주하게 되는 경우도 있다(p.456).” 나의 경우가 이런 예를 보여주고 있는 것 같아서 씁쓸하다.

앞으로 노년에 관한 부정적 담론 생성에 이바지하지 않도록 더욱 주의를 기울여야겠다. 어느 연령대의 누구라도 자기 자신이 자기 삶의 주체인 것이 당연하고 자연스러운 만큼, 노인도 자기 삶의 주체라는 당연한 사실을 진실로 반영하며 연구하자. 이러한 시각에 기초하여, “노년을 거시적이고 구조적인 요인들에 영향을 받으면서도 동시에 행위자성을 지니고 스스로의 경험과 행위의 의미를 구성하는 서사의 주체로 인정하며(정진웅, 2014, p.471)” 연구하자. 그러한 연구 결과의 축적을 통해, 가시적인 또는 무언가 측정 가능한 기준에서 소비자 또는 생산자로서 역할을 하지 않더라도, 노인이 존재 자체로 존중받는 중요한 존재로서 우리 사회에 자리매김하는 날이 오기를 기대한다. 나도 차차 노화에 대한 두려움이 줄어들고 자연스러운 삶의 과정으로 노년을 기대하게 되기를 바란다. 이렇게 이중적인 태도와 마음을 밝히 드러내며 마주한 것이 그 길로 가는 한 걸음 아닐까.

본 글은 한국노년학 41권 6호의 편집위원장 글을 본 뉴스레터에 맞추어 요약 및 수정하였습니다. 본문은 다음의 출처를 참고하실 수 있습니다.

김유진. (2021). 노년학 연구: 노인도 자기 삶의 주체라는 당연한 사실을 반영한 연구하기. 한국노년학, 41(6), 957-960.